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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름답고 풍요로운 오스트레일리아, 호주에 그늘진 구석이 있습니다. 호주의 원주민 애보리진들의 암울한 삶이 그것인데요. 18세기 말 영국인들의 집단 이주와 함께 내몰리기 시작한 애보리진들은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가장 밑바닥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야만적인 과거의 피해자, 호주 애보리진들의 삶을 이승철 순회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그늘도 없는 황무지를 걸어가는 가는 사람들. 아기를 안은 엄마부터, 소년까지 대부분 맨발입니다. 날이 밝자 마을을 떠나 인근 도시로 가는 원주민 애보리진입니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 외진 원주민 마을로 향했습니다. 호주 서부 칼고리 지역에 있는 원주민 마을 링가마야 마을 입구엔 술과 알콜 금지 구역이란 간판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마을 한켠 집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이 할아버진 이미 술 한병을 다 비워갑니다. <녹취> "상관하지 않아...괜찮아..." 검은 피부, 헝클어진 머리. 이미 알콜에 찌들대로 찌든 할아버지의 시선은 초점을 잃었습니다. 또 다른 집에선 어린이들이 옷도 입지 않은 채 흙바닥에서 놀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백인에 대한 불만이 쏟아집니다. <인터뷰> "수퍼에 옷과 음식을 사러가면 경비원들이 우리가 마치 훔칠 것처럼 생각하고따라 다닙니다." 한참 일을 해야 할 시간이지만 별다른 일 거리가 없는 원주민들에겐 카드놀이가 소일거립니다. 집안은 이들의 궁핍한 삶을 말해주듯 어지럽기만 합니다. 원주민 마을 부근은 호주 제일의 금광 지역입니다. 이 마을에서 불과 몇 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일주일에 2천만 달러어치가 넘는 금이 나오고 있지만 원주민들관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금광은 원주민들에겐 재앙이 됐습니다.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금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애보리진들은 자신이 삶의 터전을 잃어갔습니다. 인근의 또다른 마을엔 원주민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른바 보이스 하우스. 원주민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킨다는 명목아래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들을 부모에게서 떼내 강제로 서구식 교육을 시키던 곳입니다. 70년대 까지 계속된 비문명적인 정책의 희생자들을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 잃어버린 세대라고 일컫습니다. <인터뷰>마을 매니저 : "가족에게서 아이들을 떼어놓고 보호했죠 저쪽에는 여자애들만 모았어요" 그러나 백인사회에선 이들 혼혈들도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애보리진의 피가 섞이면 원주민 취급을 받았고, 차별대우가 이어졌습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시드니. 이 화려한 시드니의 뒤 안길에는 대표적 슬럼가 레드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원주민의 깃발 '쿠리'가 이곳이 애보리진의 구역임을 보여줍니다. 마을에서 만난 길리스 할아버지도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7자매 가운데 나이어린 5명이 강제로 격리된 채 성장할 때 까지 부모와 떨어져 지냈습니다. <인터뷰>브루스 길리스 : "우리들을 가족과 떨어져 보이스 홈에 데려가서는 백인들과 비슷해지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길리스 할아버지도 45살이 돼서야 부모와 다시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대낮에도 술병을 놓지 않는 원주민들. 알콜 중독은 원주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서 술병을 떼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약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애보리진 슬럼가인 이곳에서 마약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납니다. 레드펀 지역의 한쪽, 옛 유치원 건물 바닥엔 마약 투약의 흔적들이 가득히 남아있습니다. 이 부근에서는 인적이 드문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마약 봉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마약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보여줍니다. 44살인 신디씨는 누구든 만나면 1달러를 달라는 말부터 꺼냅니다. 10대 이후 지금까지 빠져있는 마약을 살 돈이 필요해서입니다. <인터뷰>신디 : "우리 엄마는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고 형제 자매도 마약에 중독됐습니다." 그녀의 팔은 중독상태에서 벌인 자해의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진 술과 마약의 폐해는 애보리진의 고단한 삶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나돌며 구걸을 하거나 정부 연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70여 만명의 애보리진들은 호주 사회의 가장 밑 바닥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영연방 체육대회가 열린 맬버른을 영국 여왕이 방문하자 원주민들은 영국과 호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를 주도했던 안타르는 7만 여명의 회원을 가진 원주민 인권단체입니다. 원주민 원로들과 양심적인 백인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무엇보다 호주 정부의 진정어린 사과만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개리 니랜드(안타르 대표) :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10만명이 넘는 원주민이 고통받았습니다. 정부는 무엇보다 그들이 받은 고통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해야합니다." 동등한 자격을 얻기 위해 땅에 대한 중요성도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95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호주 사상 처음으로 원주민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자신들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른 학교들이 원주민의 실상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학교 교장인 클라이브 씨는 정부측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원주민 마을에 사는 한 호주정부와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클라이브(원주민 학교 교장) : "조금씩 조금씩 우리 손으로 돈을 모아 땅을 샀습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땅을 구입해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땅 사기 운동을 통해 서부지역인 퍼스와 데비 등에 약간의 땅을 마련했고, 호주 각지에서 합법적으로 애보리진의 땅을 되찾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가장 어두운 그늘 속에 살아온 원주민 애보리진. 과거 200년간 그들이 겪은 고난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땅의 원주인인 그들의 고통을 감싸안기 위해서는 새로운 호주 역사가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