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졸업 청각장애 여대생 _리우데자네이루 빙고_krvip

건축학과 졸업 청각장애 여대생 _베토 앨버커키 부국장_krvip

"지난 20여년 간 제 귀가 되어주신 부모님께 학사모를 드리고 싶어요" 단국대학교 건축학과(5년제)를 14일 졸업하는 이정선(24.여.청각장애 2급)씨는 약간은 외국인처럼 어색한 발음이지만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씨는 단국대 건축학과 첫 청각장애인 입학생이자 졸업생이다. 갓난아기 때 고열로 청력을 잃은 이씨는 고도난청으로 자동차 경적소리 정도의 고음밖에 듣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에 섞여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반 유치원과 초ㆍ중ㆍ고교를 거쳐 장애인으로서는 드물게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이씨는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는데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전공하는 순수미술보다 인간의 실생활과 직접 연관된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다"라며 "특히 청각장애인이 다른 분야에서도 잘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중ㆍ고교 시절 `공부가 생활이었다'는 이씨는 건축학과를 일반전형으로 합격한 뒤에도 5년 내내 성적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4.2점(4.5점만점)의 높은 평점으로 학업을 마쳤다. 이씨의 이 같은 성공 뒤에는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다. 청음회관에서 말하고 듣는 법을 훈련한 이씨는 보청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의 높낮이와 입 모양을 읽어 다른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수업은 알아들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아버지 이혁구(54)씨와 어머니 박현애(52)씨는 외동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때부터 매일 저녁 6시면 퇴근해 예습ㆍ복습을 도왔고, 딸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강의내용이 녹음된 테이프를 하루 3∼4시간씩 듣고 활자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씨는 "두분 모두 퇴근하면 무척 피곤하실 텐데 한 번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으셨다"라며 "내가 녹음해온 모든 강의내용을 타이핑하시다 보니까 나보다 더 건축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학 때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동영상 강의를 듣고 공부해 건축기사 시험에 합격한 날 온 가족이 기뻐서 날뛰었다"라며 "자격증은 내가 딴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작품"이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보청기 때문에 놀림 받고 어색한 말투 때문에 일본인으로 오해받았던 기억, 수업시간에 모든 학생이 교수님 농담에 웃는데 혼자 못 알아듣고 오도카니 앉아있었던 모습, 다른 사람의 입 모양을 읽느라 항상 긴장됐던 시간을 이씨는 가족과 함께 이겨냈다. 이씨는 지난달 말부터 서울 방배동의 한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사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회사생활을 며칠 해보니까 그동안 부모님의 울타리가 얼마나 컸는지 알 것 같다"며 "설계를 하려면 전기나 설비 담당자 등 여러 사람과 자주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전화를 쓸 수 없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이상 건축의 영역 안에서 내게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