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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자체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인사혁신처에 결과를 통보하였으며, 인사혁신처의 심의 결과에 따라 (행위자를) 징계에 회부할 예정입니다."

'절차'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18일, KBS가 "기상관측선 '기상 1호' 내 성 비위 문제와 기강 해이"를 보도한 직후 나온 기상청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기상청의 고민은 치열하지 못해 보입니다. '피해자 보호'는 빠진 해명이 그렇고, 취재 과정에서 보여준 관계자들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이번 기상 1호 성희롱 피해에 대한 기상청의 시각도 '개인적 일탈'로 맞춰진 듯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개인적 일탈'인지, '구조'가 만들어 낸 '필연'인지, 취재 내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미처 보도에 담지 못한 '그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풀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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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1] 피해자는 왜 1년간 신고하지 않았을까?

공무원들은 보통 2년마다 근무지를 이동합니다. 여러 업무를 경험하게 하고 무엇보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입니다.
기상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상청 보직관리 규정을 보면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곤 소속 공무원의 '순환 전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상 1호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선박 운영 등 기상 1호에 투입된 인력들은 '해양수산 직렬'에 포함돼 있습니다. 기상청 안에서 이 인력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순환 근무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한 번 상사는 영원한 상사'가 되는 겁니다. 기상 1호가 운항을 시작한 이후 약 10년을 이곳에서만 근무한 직원이 있으니까요.

이런 근무 환경이 피해자의 신고를 막은 이유였습니다. 스스로 일을 관두지 않는 한 어쩌면 평생 봐야 할 이들 사이에서 '배신자' 라는 낙인이 찍힐 게 뻔했기 때문에 신고하기 두려웠다는 겁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나서도 또 같이 얼굴을 봐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그건 오롯이 신고했던 사람이 모두 감수를 해야 합니다."
- 피해자 A 씨 인터뷰 中

배라는 폐쇄적인 공간, 이곳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하는 동료. 이런 환경은 피해자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피해 신고,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일입니다.


■ [고민2] 피해자는 왜 '비밀유지 서약서'를 썼을까?

피해자가 1년의 고민 끝에 지난 8월에야 피해 사실을 신고했습니다. 기상청은 신고인(피해자)과 가해자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사상 처음으로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도 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는 처리 같아 보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가 '비밀유지 서약서'를 썼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먼저 해당 서약서 내용부터 보겠습니다.

"신고인으로서 2022년 8월 X일에 신고된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 건에 관하여 공무원고충처리규정 제16조(비밀유지 의무 등)에 의거하여 사건당사자의 신상을 포함하여 사건과 관련된 일체의 정보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것을 서약합니다."
- 피해자가 작성한 '비밀유지 서약서' 내용 中

비밀유지 서약서는 일반적으로 피해자 등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수단입니다. 상담을 진행한 '고충상담원'이나 조사를 진행한 '조사인'이 대표적인 작성 대상자죠. 그런데 기상청은 왜 피해자에게 이런 서약서를 받았을까요?

기상청에 서약서 작성 이유를 물었습니다. 답은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매뉴얼에 따라, 인사혁신처의 비밀유지 서약서 양식을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또 "외부 전문 기관에 맡겨 진행한 사안"이라고도 했습니다. 기상청의 이런 조치 적절한 것일까요?

"말씀하신 (비밀유지 서약서) 서식은 직무상 성희롱·성폭력 사항을 알게된 자에게 비밀유지의무를 확인하는 형식적 절차로 신고인 등 당사자에게 징구하지 않음"

- 인사혁신처 관계자 인터뷰 中 -

KBS가 서약서에 대해 인사혁신처와 여성가족부에 문의했습니다. 두 곳 모두 "해당 양식을 신고인(피해자)에게 징구(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취재진은 노무사와 함께 이 비밀 유지 서약서가 적절한 것인지도 분석했습니다. 결론은 아래 장진나 노무사의 인터뷰 영상에 잘 나와 있습니다.


피해 조사를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는 있습니다. 전문영역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책임'까지 외부에 위탁할 수는 없습니다. 직원의 피해를 적절하게 조사하고 피해 직원을 보호하는 일은 기상청의 역할이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