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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에 자리한 작은 나라 그루지야. 그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의 전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 그루지야가 최근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른바 장미혁명으로 구소련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를 이뤘지만 경제난으로 비틀거리다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새 출발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인데요. 요동치는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 속에서 빛바랜 장미가 되살아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도엽 순회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구 소련연방 국가 중, 제일 먼저 민주화 혁명을 이뤄냈던 그루지야…. 장미 혁명이라 이름 붙여진 지난 2003년 말의 평화적 민주 혁명은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 등 주변국의 민주화 도미노를 촉발시켰습니다. 그러나 주변 후발국들이 발전에 가속을 붙이고 있는 지금, 오히려 그루지야의 혁명의 장미는 시들어 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코카서스 산맥 아래 자리한 남한 면적 2/3 정도의 작은 나라…. 북으론 러시아, 남으론 터키 등과 국경을 맞댄 그루지야는 최근 새로운 원유 공급처로 떠오르는 카스피해 연안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집니다. '스탈린의 고향' 정도로만 우리에게 알려진 그루지야는 소련연방 당시엔 휴양지와 관광지로 비교적 풍요로운 시절을 구가했습니다. '따뜻한 곳'이라는 말뜻을 가진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는 그러나 민주화 혁명 4년여가 지난 요즘은 스산하기만 합니다. 15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이 도시는 다른 유럽의 고대 도시들과 달리 활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소련 연방이었던 CIS 국가 중에선 당시 가장 소득 수준이 높고 최고의 관광국이었던 그루지야는, 지금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가 됐습니다. 그리 많이도 찾아오지 않는 관광객들은 그나마 아름다운 풍경과 유적지를 보러오는 게 아니라, 이 트빌리시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퇴색해 가는지를 지켜보러 오는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트빌리시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과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인터뷰> 나나 코베리제(빈민촌 주민) : "무너질까 무섭습니다. 10년째 이렇습니다." 전체 인구 450만 명 중 30만 명이 실업자고 100만 명이 절대 빈곤층입니다. 장미혁명 이후 추진해 온 개혁도 한계를 넘어선 빈부격차 문제 앞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그루지야는 와인 대국으로도 유명합니다. 연간 소비량이 인구의 6배가 넘는 3천만 병에 달할 만큼 와인 사랑이 대단한데다 지난 2005년도 기준으로 최대 교역국 러시아에 대한 수출액 중 절반을 이 와인이 차지했을 만큼 경제 의존도도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 그루지야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 과정에도 바로 이 와인과 직결돼 있습니다. 와인의 대 러시아 수출이 지난 2006년부터 완전히 끊기면서 민생 경제에 큰 타격이 왔습니다. 여기엔 지난 2003년 장미 혁명으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사카쉬빌리 대통령과 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 유학파 변호사 출신 젊은 대통령 사카쉬빌리는 친미국·친유럽 정책을 표방하며 서방 자본의 투자를 독려해왔고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급기야 러시아는 보복과 압력의 수단으로 포도주·생수의 교역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터뷰> 알렉스 라파우리(포도 농부) : "러시아로 와인이 못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가 제일 큽니다. 우리같은 농부의 수입이 제일 많이 줄었습니다." 사카쉬빌리의 친서방·반러시아 정책이 촉발시킨 러시아의 경제 금수조치로 지방의 민심은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초부터 일기 시작한 그루지야의 반정부 시위는 그해 11월에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독선적 정책과 측근 비리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빈곤과 실업 등 먹고살기 힘든 경제현실이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미 혁명 당시 98%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올랐던 사카쉬빌리는 그를 지지했던 국민이 시위대로 변모해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시위로 위기에 봉착하자 사카쉬빌리는 지난해 11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조기 대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지난달 2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루지야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주인공은 재선에 성공한 41살의 사카쉬빌리... <인터뷰> 사카쉬빌리(그루지야 대통령) : "4년전 장미혁명은 절제되지 않은 약속으로 나라를 휘감았습니다. 이제는 결점을 보완해 그 약속을 새롭게 할 때입니다." 결선 투표에 가지 않아도 되는 52.8%의 득표율을 얻은 승리, 투·개표 과정에서의 적지 않은 문제로 '부정 선거' 시비가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불거지면서 취임식이 열리는 시각 다른 장소에선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수만 명의 시위자가 선거 무효를 요구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인터뷰> 레반 가체질라제(야당 대선 후보) : "우리는 자유선거와 독립된 법원, 자유 언론이 성취될 때까지 합법적으로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특히 사카쉬빌리가 눈엣가시 같았던 러시아는 부정 선거의 결과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취임식 전날까지도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뜻밖에도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참석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부정 선거에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만의 반발만으로 선거 결과를 뒤집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쪽으로 러시아가 전략 수정을 한 것입니다. 사카쉬빌리도 이를 의식한 듯 다른 모든 축하 사절을 제쳐놓고 이 특별한 축하 사절의 참석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인터뷰> 사카쉬빌리(그루지야 대통령) : "상호 존중과 우정, 공동 이익의 정신으로, 우리 친구 러시아와 함께 변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한마디는 친 서방, 반러시아를 표방했던 1기 정권 때와는 다른 변화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소련 연방이었던 그루지야에서 이제는 러시아말을 할 줄 아는 어린이는 거의 없습니다. 과거엔 초등학교 2학년부터 러시아어 교육이 의무였지만 이제는 영어가 그 자릴 차지했습니다. 요즘 그루지야엔 영어를 하면 직업이 생기고 러시아어를 하면 실업자가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닉 콰르첼리아(초등4학년) : "저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제 생각엔 영어가 프로그래머 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비록 러시아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서 러시아와 화해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궁극적으론 EU 체제 편입이 그루지야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여론은 사카쉬빌리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61%를 넘는 것으로 대선과 병행한 국민투표에서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게오르기 시르빌라제 : "첫 유럽인도 이 땅에서 태어났으니 우리는 유럽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EU와 나토에 곧 가입할 것입니다." 사카쉬빌리 2기 정부는 친서방 일변도에서 서방과 러시아 간 균형점을 잡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러시아 측에선 그루지야 와인 수입 재개를 검토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사카쉬빌리는 서방과 러시아 간 줄타기를 통해 벌써 가시적 성과를 얻어낸 셈입니다. 한편으론 서방 측에는 EU와 나토 가입을 가속화하기 위한 지렛대로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활용할 전략입니다. 그루지야의 정국은 지난달 20일 거행된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논쟁이 일단락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사카쉬빌리가 '경제'와 '민주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그루지야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지켜볼 일입니다. 지난 2003년 장미혁명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셈입니다.